불평등의 대가 - 조지프 스티글리츠
불평등의 대가
불평등의 대가에서 말하는 세 가지 주제는 아래와 같습니다.
1. 시장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었다. 누가 보기에도 시장은 효율적이지 않고, 안정적이지도 않았다.
2. 정치 시스템은 시장 실패를 바로잡지 못했다.
3. 현재 경제 시스템과 정치 시스템은 근본적으로 공정하지 않다.
저자는 불평등에 대해서 그리고 분열된 사회는 왜 위험한지 그 대가는 어떠한 것인지 대해 이야기합니다.
상위 계층에게 돈이 돌아간다고 해서 당연히 고용 창출과 혁신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상위 계층이 차지한 돈의 일부는 정치를 왜곡시키는 활동에 투입된다.
상위 계층이 부를 공동으로 사용하는 목적은 지대 추구에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정치 과정을 통해서 불평등을 영속화하는 데 있다.
상위 계층의 담세율이 중하위 계층의 담세율보다 낮은데도 불구하고 상위계층이 피해를 입고 있다며 엉뚱하게 공정성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미국의 상위 계층 중 일부가 부유층이 더 많은 돈을 차지하면 모두가 그 혜택을 본다는 경제적 환상을 고취하는 일에 매달리는 것은 그리 대수로운 일이 아니다. 걱정스러운 것은 이들의 노력이 결실을 거두어 수많은 미국인들이 이런 환상을 가지게 되었다는 데 있다.
은행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하락한 국가에서 자본이 쉽게 빠져나갈 수 있다.
브라질은 빈곤 아동 보호 프로그램 투자를 통해서 불평등이 크게 완화되고 있다.
대체로 조세 누진성이 취약한 나라일수록 불평등이 심각하다.
분수 경제 이론은 하위 계층과 중위 계층의 소득이 늘어나면 모든 계층이(심지어 상위 계층도) 혜택을 볼 수 있다.
부자는 갈수록 부자가 되고 부자 중에서도 최상층은 더욱 큰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갈수록 가난해지고 그 수가 많아지며 중산층은 공동화되고 있다.
중산층의 소득은 정체되거나 감소하고 있고, 중산층과 부유층 사이의 간극은 갈수록 넓어지고 있다.
노동 시장의 양극화는 상위 계층으로 가는 돈이 늘어나고, 하위 계층으로 이동하는 사람의 수가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위 계층은 사회의 나머지 성원들이 눈치채기 어려운 방법을 이용해서 그들로부터 돈을 뽑아내는 법을 터득했다. 바로 이것이 이들이 이룩한 진짜 혁신이다.
현재 미국의 구조는 네거티브 섬 게임으로 승자가 얻은 이익이 패자가 입은 손실보다 적은 게임이다.
국가 자산을 시장 가격에 크게 못 미치는 가격에 인수하면 쉽게 갑부가 될 수 있다.
성공의 참된 열쇠는 경쟁이 아예 일어나지 않도록 하거나 큰 수익을 올리기에 충분한 시간 동안 경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독점을 유지하는 데 있다. 독점을 유지하는 가장 간단한 경로는 정부로부터 독점권을 인정받는 것이다.
특허법률은 혁신의 속도를 최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지대를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 있다.
혁신이 현실에 응용될 수 있으려면 기초 연구가 충실해야 하는데도 우리는 기초 연구에 충분한 투자를 하지 못하고 있다.
은행들은 교육 수준이 낮고 금융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부족한 사람들의 약점을 이용하여 그들에게 높은 비용이 드는 주택 담보 대출 상품을 판매하면서 그 수수료에 대한 내용은 대다수 사람들이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작은 글자로 된 조항 속에 숨기는 방식으로 약탈적인 대출을 일삼는다.
부와 관련해서 사회 계층 간 간극이 벌어질수록, 부자들은 공익을 위한 지출에 저항감을 느낀다.
경쟁자들이 누가 소비자를 착취하느냐를 놓고 싸움을 벌이기 때문이다.
공교육 체계가 부실한 경우에는 부모의 재산(교육, 소득)이 자녀의 재산을 결정하는 주된 요인이 된다.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인식은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고용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할 경우 사람들은 맡은 일을 소홀히 할 가능성이 높다.
대형 은행들은 자신들이 규모가 크기 때문에 위험한 대출이라는 도박에서 진다고 해도 반드시 구조를 받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상위 계층이 바라고 원하는 것은 만인에게 이로운 것이라는 확신을 만인의 마음에 새기기 위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바로 상위 계층에 대한 세금 감면, 재정 적자의 축소, 정부 규모의 축소다.
저자가 제시하는 개혁 방법은 첫 번째로 하위 99퍼센트 소득층이 자신들이 상위 1퍼센트의 농간에 놀아나고 있으며, 상위 1퍼센트에게 이로운 것은 자신들에게 이로운 것이 아님을 깨달아 가는 경로다.
두 번째는 상위 1퍼센트가 미국에서 진행되어 온 일들은 우리의 가치에 부합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신의 이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엘리시움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상위 1퍼센트가 유토피아 같은 장소 엘리시움에 머무르며 모든 것을 누리고 나머지 99퍼센트는 황폐화된 지구에서 상위 1퍼센트를 위해 살아가는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저자가 말한 상황이 계속된다면 그 영화의 배경은 현실로 일어날지도 아니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불평등의 대가는 우리나라에 2013년 발간되었고 미국을 배경으로 하여 저자의 의견을 풀어내고 있지만 이 책을 읽고 있는 2018년 현재 왜 우리나라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기분이 드는 것일까요?